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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수니파 vs 시아파 이슬람교와 그 종파

무함마드는 570년 경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6살 때 어머니를 읽고 조부에 의해 키워졌다. 그 후 어느정도 자란 후에 하디자(Khadija)라는 부유한 미망인에게 고용되어 낙타몰이꾼(Caravan)으로 시리아를 자주 왕래했다. 낙타몰이꾼으로 성공한 무함마드는 25세 때 40세의 하디자와 결혼했다. 결혼 15년 후 40세에 무함마드는 사회의 부정부패에 깊은 혐오와 회의를 같고 히라(Hira)동굴에 칩거하였다.
이 때 계시를 받고, 그때부터 Islam (아라비아어로 '복종')을 외치며 진리를 설파했다. (Muslim은 복종하는 자를  뜻함)
무함마드는 꿈에서 가브리엘의 인도를 받아서 예루살렘의 바위에 도착한 후, 빛 사다리를 타고 하늘에 올라 알라의 진리를 계시받았다. 무함마드는 문맹이였지만 낙타몰이꾼으로 일할 때 성서의 내용을 어느정도 배웠다.

무함마드의 전도에 의해서 신자들과 추종자들이 어느정도 생기자, 그 당시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무함마드 일행을 탄압하였다. 자신을 키워줬던 백부와 부인이 탄압에 의해 죽은 후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이동한다.

당시 메디나는 주요한 상업도시이고, 여러부족의 이해관계가 얽혀 중재자가 필요한 상태였다. 따라서 메카에서 온 무함마드는 중재자, 정치지도자, 국가지도자, 법률제정가로 추대받았다.

무함마드의 정치는 훌륭했고 점점 더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 후 무함마드는 종교적 거점지 메카를 공격했고, 그 후 대부분의 아랍국가를 통일하였다.

무함마드는 10명의 여자들과 결혼하였고 (무슬림들이 주장하기에 '국가적 관계'때문이라고 한다.) 훌륭한 통치자로 인정받는다. 무함마드는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 후 이슬람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그의 동료이고 존경을 받고있던 아부 바크르(Abu Bakr), 우마르(Umar), 아부 우바이다(Abu Ubayda)의 협의에 의해 아부 바크르가 선출되었다.

세습이 아닌 합의에 의한 선출, 이것이 칼리파 제도이다. 칼리파란 무함마드의 계승자들을 뜻한다. 이 칼리파들을 따르는 것이 현재 가장 많은 무슬림인 '수니파' 이다.

1대 칼리파는 아부 바크르, 2대 칼리파는 우마르, 3대 칼리파는 오스만, 4대 칼리파는 알리이다.

이 4대 칼리파인 알리 때문에 '시아파'가 생기는데, 그 이유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가 알리이기 때문이다.
3대 칼리파인 오스만은 피살당했는데, 그 공범들 중 알리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무슬림은 "자격없는 살인자 알리는 칼리파가 될 수 없다"의 입장인 수니파, "무함마드의 핏줄이 자격이고 살인혐의는 입증할 수 없다"의 시아파로 나뉘였다.

알리가 칼리파가 되자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는 내전이 벌어지고, 처음에는 알리를 지지하다가 돌아선 집단이 생겼다.

이 집단을 '카와지리파'라고 부른다.

이후 이슬람은 수니파, 시아파, 카와지리파 등 종파들이 서로 나뉘어 현재는 200개의 여러 종파를 갖는다.

이 중 83%는 수니파, 16%는 시아파가 차지한다.

이란은 국교가 시아파이고, 이라크 레바논 아프카니스탄 아라비아 반도 등에도 많은 시아파가 살고있다.

나머지 이슬람 국가는 수니파이다.

IS는 Islamic State의 약어로,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수니파 급진파 무장단체이다.
출처:인터넷 여기저기 짜집기